술꾼들의 은밀한 아지트, 스피크이지 바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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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은밀한 아지트, 스피크이지 바 ③
  • 이미진 기자
  • 승인 2019.11.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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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꼭 100년 전, 미국에서 금주법이 비준됐다. 술맛을 잊지 못한 애주가들은 밀매점이나 비밀스러운 바를 만들어 음주를 이어갔다. 스피크이지 바가 다시 등장한 건 20세기 후반. 입구를 찾기 어렵거나, 꽃집이나 타코 가게인 줄 알고 들어간 곳에서 난데없이 근사한 바가 등장하기도 한다. 미국과 유럽을 넘어 아시아의 바 신을 강타한 스피크이지 바 12곳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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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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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보다 더 현지인처럼 878 바 878 Bar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서쪽 부근에는 비야 크레스포(Villa Crespo)라는 조용한 동네가 있다. 19세기 이민자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곳. 대부분 주택가지만 탱고 공연이 펼쳐지는 레스토랑 겸 공연장인 탕게리아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878 바는 타메스 거리의 878번지에 위치, 오초7오초(Ocho7Ocho)라고도 불린다.

간판도 이름도, 심지어 번지수도 표시돼 있지 않지만,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유독 길어 스피크이지 바치고는 허탈하리만큼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878 바는 기존 방직공장을 개조해 만든 바. 초창기에는 힙하고 쿨하다는 소수의 손님만이 모여드는 아지트였는데, 지금은 줄을 오랫동안 서지 않고는 들어가기 어려운 핫플레이스가 됐다.

벨을 누르고 입구에 들어서면 은은한 조명 아래, 날것의 벽이 모습을 드러내고 폭신한 소파가 시야를 메운다. 칵테일 메뉴로 다채로운 클래식 메뉴는 기본, 부에노스아이레스만의 분위기를 담은 이색적인 메뉴도 갖추고 있으니 독특한 맛을 즐기고 싶다면 로컬 메뉴를 놓치지 말자. 술과 곁들이기 좋은 로컬 푸드도 꽤 맛이 좋은데, 밀가루 반죽을 튀긴 빵 부뉴엘로, 시금치 볼 튀김, 그뤼에르 치즈 등이 있다. 바 안에 비교적 한산한 두 번째 비밀 바가 숨어 있으니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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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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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은밀한 밤 스피크 로우 Speak Low

푸싱루(Fuxing Lu)는 1849년부터 1943년까지 프랑스인들이 모여 살던 상하이의 거리.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지금은 상하이 힙스터들의 성지가 됐다. 푸싱루에 자리한 스피크 로는 작은 소리로 말하라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스피크이지 바다. 간판에 ‘OCHO’라는 이름을 걸고 바텐딩 도구를 파는 전문점처럼 꾸몄다.

그럴싸한 도구를 구경하다 보면 자칫 이곳에 온 목적을 잊을지도 모른다. 믹솔로지 책이 빼곡한 책장을 찾아 옆으로 밀면 어두운 통로 속 계단이 나온다. 이곳을 올라야 비로소 바가 등장. 이곳을 오픈한 바텐더는 이미 뉴욕에서 에인절스 셰어(Angel’s Share)라는 스피크이지 바로 명성을 얻은 고칸 싱고. 18세에 긴자에서 바텐딩을 시작해 스페인, 미국에서 활동한 이력답게 여러 문화가 뒤섞인 칵테일을 선보인다. 말차와 쿠바의 화이트 럼인 바카디 슈페리어, 스페인의 페드로 히메네즈 백포도주를 섞은 ‘스피크 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그너처 메뉴.

더 흥미로운 것은 숨은 공간이 또 있다는 사실. 바 한쪽에 오래된 세계지도가 있는데, 상하이를 찾아 꾹 누르면 20석을 갖춘 두 번째 공간이 등장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두 번째 바에서 ‘Employees Only’라는 표지판을 찾으면 희귀한 위스키를 갖춘 최고급 바가 나타난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가격은 높아지지만,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 신이 절로 날 것. 2016년 ‘월드 50 베스트 바’에 15위로 데뷔, 2018년 20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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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Supper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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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형 카바레 언타이틀드 서퍼 클럽 Untitled Supper Club

화려한 재즈 음악과 매혹적인 춤, 예상 못한 사건사고의 연속. 뮤지컬 <시카고>에서 주인공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가 넘치는 재능을 뽐내던 극장을 잊을 수 없다면 한 번쯤 꼭 찾아가야 할 곳이 있다. ‘언타이틀드 서퍼 클럽’이 바로 그곳. 영화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바 겸 레스토랑으로, 영화 속 바람의 도시인 시카고에 위치하고 있다.

널찍한 도로에 거대한 약국 ‘CVS’가 모퉁이를 끼고 있는데, 약국과 지하 주차장 사이에 위엄 있게 서 있는 철제 문이 방문객을 비밀스럽게 지하로 안내한다. 이곳이 바로 192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메뉴는 기본, 흥겨운 라이브 뮤직과 화려한 춤이 내내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는 20세기형 카바레다.

공간은 다이닝 룸, 550종 이상의 위스키를 보유한 위스키 라이브러리, 언타이틀드만의 특별 공연이 펼쳐지는 라운지로 구성된다. 프라이빗한 룸도 있어 친구들끼리 파티를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먹고 마시는 메뉴는 모두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터치가 가미돼 지루할 틈이 없다. 블루스부터 솔, 리듬앤드블루스, 벌레스크 등 매일 펼쳐지는 라이브 공연도 다양한 장르로 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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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ee High Stocking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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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ee High Stocking Company

필리핀과 미국의 경쾌한 만남 니 하이 스타킹 컴퍼니 Knee High Stocking Company

시애틀에서 나고 자란 필리핀계 자매 미셸 발코(Michelle Valko)와 파멜라 카르피오(Pamela Carpio)가 함께 운영하는 스피크이지 바 겸 레스토랑.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양말(Knee High Stocking)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독특하고도 재기발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시애틀에서 스피크이지 바가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선두에 나선 바 중 하나로, 시애틀에 크래프트 칵테일이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선보인 곳이기도 하다.

필리핀 요리에 미국스러운 스타일을 곁들인 컴포트 푸드는 물론, 두 자매가 개발한 독창적인 칵테일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압생트나 스카치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인상적인 칵테일이 특히 눈길을 끈다. 금주법 시대에 유행한 칵테일에 모던한 터치를 가미한 것은 물론 ‘아시아가 유럽을 만난다’는 테마로 다문화적인 콘셉트를 보여준다.

유럽의 노동자들이 빵이나 크래커처럼 간단한 음식에 술을 곁들이던 문화에서 힌트를 얻는가 하면,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나 치포틀 가루를 뿌린 너츠처럼 이국적인 음식을 곁들이기도 한다. “할머니 댁에서 열리는 일요일 만찬 자리에 초대하지 않을 사람은 함부로 데려오지 말라”는 재미있는 경고문도 걸려 있으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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