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의 은밀한 아지트, 스피크이지 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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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은밀한 아지트, 스피크이지 바 ①
  • 이미진 기자
  • 승인 2019.11.01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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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꼭 100년 전, 미국에서 금주법이 비준됐다. 술맛을 잊지 못한 애주가들은 밀매점이나 비밀스러운 바를 만들어 음주를 이어갔다. 스피크이지 바가 다시 등장한 건 20세기 후반. 입구를 찾기 어렵거나, 꽃집이나 타코 가게인 줄 알고 들어간 곳에서 난데없이 근사한 바가 등장하기도 한다. 미국과 유럽을 넘어 아시아의 바 신을 강타한 스피크이지 바 12곳을 소개한다.
©2019 Museum HR Giger/Andy Davies    
©2019 Museum HR Giger/Andy Davies    

초현실주의 화가의 상상력 HR 기거바 HR Giger Bar

그뤼에르 치즈로 유명한 스위스의 작은 마을 그뤼에르. 그뤼에르 관광 안내소와 그뤼에르성 사이에 생뚱맞게 공상과학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철제 문이 우두커니 서 있다. 양 문에 코가 긴 해골 조각이 있어 더욱 기묘한 느낌. 스위스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한스 루돌프 기거가 설계한 바다. 기거는 1979년 개봉한 영화 <에이리언> 속 외계인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뤼에르의 HR 기 거 바는 2003년 오픈, 그의 아트워크를 전시하는 HR 기거 박물관 건너편에 있다.

전체 공간은 마치 야수의 배 속으로 들어온 듯 꾸며 져 있다. 갈비뼈를 연상시키는 천장부터 벽, 바닥, 부속품, 테이블, 의자까지 모두 그가 하나하나 세심하게 디자인한 것. 뼈로 엮어 만 든 괴기스러운 가구는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지만 앉아보면 의외로 안락하다. 그뤼에르 치즈 공장에서 독특한 향의 그뤼에르 치즈를 즐겼다면, HR 기거 바로 발걸음을 돌려 오싹하게 칵테일 한잔 즐겨보자.

 

 



©Alberto Blasetti
©Alberto Blasetti

이탈리아 최초의 비밀 바 제리 토마스 스피크이지 The Jerry Thomas Speakeasy

바티칸에서 테베레강을 건너 로마 시내로 들어가는 길 중에서도 매우 좁은 뒷골목. 주택가만이 보이는 이곳에 간판도, 이름도 적혀 있지 않은 비밀스러운 바가 있다. 이름은 제리 토마스 스피크이지. 유행이 지났다고 치부되던 클래식 믹싱 스타일을 부활해보자는 생각에 여러 바텐더와 스피릿 애주가, 호기심 많은 오너가 모여 2010년 오픈했다. 바 이름도 아메리칸 믹솔로지의 아버지’ ‘교수라는 별칭을 지닌 19세기 미국의 유명 바텐더 제리 토마스에서 따온 것.

처음엔 조용한 시크릿 바로 시작했는데, 점차 여행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세미나가 열리는 등 문화 교류의 장으로 성장했다. 바 신으로 뚜렷한 색깔이 없던 로마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 월드 50 베스트 바에도 무려 5년 연속 이름을 올려 로마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에 가기 위해 예약 방법을 찾는다면 헛수고가 될 것. 이메일로도 전화로도 예약을 절대 받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입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암호다. 홈페이지에 숨어 있는 질문을 찾고 답변을 하면 암호가 포함된 메일을 받을 수 있다.

 

 


ⓒLa Esquina
ⓒLa Esquina

멕시칸 식당의 3중생활 라 에스키나 La Esquina

스페인어로 모퉁이라는 뜻의 ‘라 에스키나(La Esquina)’는 뉴욕 소호 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CORNER’라고 크게 적힌 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녁에는 간판에 붉은빛이 들어와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이곳의 정체는 타코 가게(Taqueria). 점심에도 저녁에도 먹음직스러운 타코와 볼, 케사디야를 맛보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카페도 겸해 주말에는 브런치를 즐기기 좋아 인기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저녁 즈음,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시작된다. 식당 안, ‘직원 전용(Employees Only)’이라고 적힌 문 뒤에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숨어 있다. 이곳을 따라 내려가면 지배인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안내를 받고 지나게 되는 곳은 복도가 아닌 주방. 요리사들이 불 앞에서 신성한 노동을 하는 실제 주방을 지나는 경험이 이색적이다. 진기한 통로를 지나면 드디어 이곳의 히든젬, 브래서리에 도착한다.

이제 술을 당기는 멕시칸 안주에 테킬라와 메즈칼 음료나 마르가리타나 팔로마 같은 칵테일을 곁들일 차례. 멕시칸 브래 서리답게 멕시코 술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테킬라는 크게 59일 정도로만 숙성하는 블랑코, 우드 배럴에서 2개월 이상 숙성하는 레포 사도, 적어도 1년 이상 숙성하는 아녜호 등으로 나뉘는데, 세부 종류는 아찔할 만큼 많다.

 

 


ⓒFlorería Atlántico
ⓒEstelle Chavriacouty

꽃집과 술집의 상관관계 플로레리아 아틀란티코 Florería Atlántico

화려한 꽃이 한 폭의 센터피스를 이루고 있어 꽃집인가 했더니, 뜬금없이 책장과 와인 셀러, 공중전화 박스가 나타나는 곳. 냉장고 문을 열면 계단이 나오고, 이윽고 스피크이지 바 플로레리아 아틀란티코가 등장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남미의 어느 항구에 400만 명이 넘는 유럽 이민자가 발을 디뎠다. 연약하고도 관능적인 이 항구도시에는 영국 진, 네덜란드 예네버르, 이탈리아 비터, 안달루시아 헤레스, 쿠바 럼, 페루 피스코, 프랑스 샴페인, 포르투갈 와인 등 온갖 술이 한데 모였고, 자연스럽게 화려한 칵테일 문화가 꽃피웠다.

꽃집으로 가장한 이곳도 이민자의 다이내믹한 삶과 문화를 콘셉트로 한다. 오너 바텐더 레나토 타토 히오바노니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의 창의력은 칵테일의 세계와 만나 빛을 발했고 이색적인 메뉴를 탄생시켰다. 풀포 블랑코(Pulpo Blanco)는 진과 토닉에 마테 잎을 인퓨징해 만든 칵테일로 남미의 향취가 한가득이다. 할아버지가 즐기던 레시피를 응용한 발레스트 리니 네그로니(Balestrini Negroni)는 직접 양조한 진에 바닷물, 훈연한 유칼립투스 잎을 넣어 짭조름한 풍미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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